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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불루 화이불치 作新宮室 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우리의 고건축에서는 삶을 살아가는 지혜와 가르침을 많이 얻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이 되는 가르침은 바로 ‘배려’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 온조왕 15년조에서 김부식(1075-1151)1)은
백제의 궁궐 건축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작신궁실 검이불루 화이불치 作新宮室 儉而不陋 華而不侈”
‘새 궁궐을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말을 정도전이 그대로 이어받아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에서도 언급했다.
나는 현대 우리 사회에도 그 정신이 이어지길 개인적으로 바라고 있다.
굽이굽이난 궁궐길을 걷다보면 '검이불루 화이불치'의 정신이 건축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궁궐이지만 그 어떤 건물도 지나친 것이 없으며 무엇하나 나무의 키를 넘는 것이 없다.
산자락에는 기대고 물자락은 피해서 겸손하게 지어진 것이다.
이것은 우리 고건축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는 힌트다.
첫째는 자리앉음새, 둘째는 기능에 맞는 규모, 셋째는 모양새이다.
즉, 건물을 어떻게 앉히느냐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인데 이는 전통적으로 풍수의 자연 원리에 입각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풍수의 기본 골격을 마련한 분은 스님 도선대사(827-898)인데,
그 가르침이 참으로 위대하여 고려, 조선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그 좋은 예로 <고려사> 충렬왕 3년 조의 다음과 같은 기사를 들 수 있다.
'산이 드물면 높은 누각을 짓고 산이 많으면 낮은 집을 지으라'
산이 많은 것은 양(陽)이 되고 산이 적으면 음(陰)이 되며 높은 누각은 양이 되고 낮은 집은 음이 됩니다. 우리나라에는 산이 많으니 만약 집을 높게 짓는다면 반드시 땅의 기운을 손상시킬 것입니다. 그 때문에 태조 이래로 대궐 안에 집을 높게 짓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민가에 이르기까지 이것을 완전히 금지했습니다. 하늘 강(剛)하고 땅은 유(柔)한 덕이 갖추어지지 못하면... 장차 무슨 불의의 재앙이 있을 것이니 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코로나-19 이전에 한참 해외여행이 성행하던 시절,
사람들은 외국의 장대한 건축물을 보고 감탄하여 그것을 우리 고건축과 비교하며
왜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건축물이 없는 지에 대해 아쉬움을 느껴하는 사람이 많곤 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고건축에 담긴 선조들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궁궐들을 거닐다보면 새삼 우리의 고건축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이렇게
자연환경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감동을 받는다.
기둥과 기둥사이에는 벽을 만들지 않아 건축공간에 자연을 끌어들이고
단청의 색은 자연의 색과 빼곡히 닮아 있다.
자연을 활용해 공간을 더욱 넓게 쓰는 지혜가 건축 공간 곳곳에 담겨 있다.
자연에게 겸손하지만 결코 자연에게 눌리지 않고 당당하지만 거만하지 않는 것이다.
자연과 건축이 하나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고건축에서 배울 수 있는 선조들의 건축이다.
또한 정조는 <경희궁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체로 궁궐이란 임금이 거처하면서 정치를 보는 곳이다. 사방에서 우러러 바라보고 신하와 백성이 둘러 향하는 곳이므로 부득불 그 제도를 장엄하게 하여 존엄함을 보이는 곳이며 그 이름을 아름답게 하여 경계하고 송축하는 뜻을 부치는 것이다. 절대로 그 거처를 호사스럽게 하고 외관을 화려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겉으로 비춰지는 화려함이 아닌 백성을 생각하고
인간과 함께 공생하는 자연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지어진 건축
이것이 우리 궁궐에서 느낄 수 있는 진면목인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건축은 인문학이라고.
우리 고건축에 담긴 애민정신과 자연을 배려하는 마음은 고스란히 나의 삶에도 영향을 끼친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 정말 어울리는 건축은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이 자주 들곤 한다.
지금 우리의 건축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우리의 현대 건축은 편의성 측면에서 봤을 때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최고의 건축이지만,
그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는 적고 천편일률적으로 지어지기에 정감 있는 동네 느낌이 나지 않는다.
특히, 신도시에 가면 이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삶의 질 보다는 단순 주거 물량 공급에만 집중하고 사람을 중심에 두지 않고 물리적인 시설에만 초점을 둔 결과다.
이것은 건물만 보고 건축은 보지 않은 셈이다.
선조들이 자연을 배려했고 백성을 생각하며 설계했던 그 마음을
지금의 건축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숲으로 둘러 쌓였던 우리의 도시는 이제 아파트숲으로 둘러 쌓이고 있다.
30년 마다 헐고 짓는 이 아파트 문화를 우리가 후손들에게 그대로 전해줘야 하는 것일까?
선조의 우수함을 계승받은 이 시대의 건축물은 없는 것일까?
만약 우리 선조들이 지하에서 다시 눈을 뜨시다면 무엇을 가장 후대에게 야단치실까?
아마 그 일번이 건축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좁은 국토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에 아파트는 최적의 상품이 분명 맞지만
후손들에게 이대로 물려줘서는 안된다는 절박감을 갖게 된다.
조금만 더 우리의 지형과 자연을 고려한 조화를 좋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면
훗날 우리의 선조들을 마주하게 될 날 조금이라도 더 떳떳하게 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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