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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기에 더 아름다웠던 문장들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을 읽고
감수성이 굉장히 촉촉해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만큼 소박하면서 마음에 와닿는 글을 참 잘 쓰시는 것을 보며,

작가님이 유명하신 이유를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작가님 책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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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감명 깊었던 구절을 나누겠습니다 :)


<친절한 사람과의 소통> 中


#1.
아차산은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도전하고 싶을 만큼 높지도 험하지도 않다.
서울을 둘러싼 기품 있고 웅장한 명산과 비교할 때 더욱 그렇다.
그러나 나는 첫눈에 들었으니 아마 그 산세가 내 나이에 버겁지 않아 보였기 때문일 터이다.

#2.
혼자 걷는 게 좋은 것은 걷는 기쁨을 내 다리하고 오붓하게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70년 동안 실어 나르고도 아직도 정정하게 내가 가고 싶은 데 데려다주고
마치 나무의 뿌리처럼 땅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다리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늘 내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3.
길은 사람의 다리가 낸 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낸 길이기도 하다.

 

<유쾌한 오해> 中


#4.
환상적인 모자를 쓴 여아를 상상하는 건 뱃속이 간지럽도록 즐거운 일이었다.

 

 

<수많은 믿음의 교감> 中


#5.
믿었다가 속은 것도 배신당한 것에 해당하겠지만
못 믿었던 것이 실상은 믿을 만한 거였다는 것 역시 배신당한 것일 수밖에 없겠고
배신의 확률은 후자의 경우가 훨씬 높을 것이다.

#6.
우리가 믿음에 대해 쉬 잊고 배신을 오래 기억하며 타인에게 풍기지 못해 하는 것도
우리의 평범한 일상의 바탕이 결코 불신이 아니라 믿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7.
우리가 아직은 악보다는 선을 믿고 ...
소리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선, 무의식적인 믿음의 교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사십 대의 비오는 날> 中


#8.
믿지 못하는 게 무식보다도 더 큰 죄악이 아닌가도 싶다.

#9.
덜 똑똑한 사람의 소박한 인간성이 겨울철 뜨뜻한 구들목이 그립듯이 그리워진다.
나이를 먹고 세상인심 따라 영악하게 살다 보니
이런 소박한 인간성은 말짱하게 닳아 없어진 지 오래다.

#10.
또 비 오는 날이었다.

 

 

<보통 사람> 中


#11.
"크게는 안 바라요. 그저 보통 사람이면 돼요."
가장 겸손한 척 가장 욕심 없는 척 이렇게 말했지만
실은 얼마나 큰 욕심을 부렸었는지 모른다.
욕심 안 부린다는 말처럼 앙큼한 위선은 없다.

#12.
제 마음에 드는 짝을 제각기 찾아내서 부모의 승낙을 받고 슬하를 떠났으니 큰 효도한 셈이다.

 

 

<꿈> 中


#13.
여학교 시절을 보낸, 지금도 변하지 않은 옛집과 그 앞을 지나는 여학생들의 모습은
문득 나에게 시간 관념의 혼란을 가져왔다.

#14.
예기치 않은 일에 대한 기대가 즉 꿈일 수 있겠는데 나는 그걸 기피하고
다만 시계처럼 하루를 보내기에 급급하다.

#15.
고기 없는 물이 아무리 깨끗해도 살아 있는 물이 아닌 것처럼

#16.
조금 덜 바빠져야겠다. 너무 한가해 밤이나 낮이나 꿈만 꾸게는 말고,
가끔가끔 단꿈을 즐길 수 있을 만큼만 한가하고 싶다.

 


#17.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계획 밖의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나길 소망하면서 가슴을 두근대고 싶다.
밖에 나갈 땐 정성껏 화장을 하고 흰 머리카락이 비죽대지 않나 살펴 머리를 빗고,
어떤 옷이 가장 잘 어울리나, 이 옷 저 옷 입었다 벗었다 하고 싶다.
예기치 않은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부풀어서.

 

 

<넉넉하다는 말의 소중함> 中


#18.
아무리 많아도,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줄 생각은커녕
더 빼앗아다가 보탤 생각만 굴뚝같다면 가난뱅이와 무엇이 다를까.

 

 

<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 中


#19.
예사로운 아름다움도
살날보다 산 날이 많은 어느 시기와 만나면
깜짝 놀랄 빼어남으로 빛날 수 있다는 신기한 발견을
올해의 행운으로 꼽으며 1982년이여 안녕.

 

 

 

<생각을 바꾸니> 中


#20.
수녀님이 이상하다는 듯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래, 내가 뭐관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을 나에게만은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여긴 것일까.
그것이야말로 터무니 없는 교만이 아니었을까.

#21.
손바닥의 앞과 뒤는 한 몸이요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뒤집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가장 먼 사이이기도 하다.
사고의 전환도 그와 같은 것이 아닐까.

 

 

<행복하게 사는 법> 中


#22.
부족한 것 천지였습니다.
넉넉한 건 오직 사랑이었습니다.

#23.
남의 좋은 점만 보기 시작하면 자기에게도 이로운 것이,
그 좋은 점이 확대되어 그 사람이 정말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변해 간다는 사실입니다.

#24.
모든 불행의 원인은 인간관계가 원활치 못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내가 남을 미워하면 반드시 그도 나를 미워하게 돼 있습니다.
남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나는 잘못한 거 없는데
그가 나를 싫어한다고 여기는 불행감의 거의 다는 자신에게 있습니다.
자신이 그를 좋아하지 않고 나쁜 점만 보고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25.
사랑 받을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런 인간을 하느님이 창조하셨을 리가 없습니다.

#26.
지나간 날의 추억 중에서도 사랑받은 기억처럼
오래가고 우리를 살맛 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건 없습니다.

 

 

<민들레꽃을 선물 받은 날> 中


#27.
손자와 함께 맡는 민들레꽃 내음은 참으로 좋았다.
그 조그만 게 피어나기 위해 악착같이 뿌리 내린 흙의 저 깊은 속살의 꿋꿋함과
그 조그만 것까지 골고루 사랑한 봄바람의 어질고 부드러운 마음까지를 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28.
나는 손자에게 쏟는 나의 사랑과 정성이 갚아야 될 은공으로
기억되기보다는 아름다운 정서로 남아 있길 바랄 뿐이다.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中


#29.
검소한 생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되 인색하지는 않기를.
아는 것이 많되 아는 것이 코끝에 걸려 있지 않고 내부에 안정되어 있기를.

 

 

<내 기억의 창고> 中


#30.
행복의 절정처럼 빛나는 순간도 그걸 예비한 건 불길한 운명이었다는 게
빤히 보여서 소스라칙 되는 것도 묵은 사진첩을 이르집기 두려운 까닭이다.

 

 

<중년 여인의 허기증 중>


#31.
그해 7월처럼 뜨거웠던 여름은 다시없었던 것 같다.

#32.
글을 하나 써내는 것도 자식을 하나 낳아 놓는 것만큼
책임이 무거운 큰일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33.
모든 것은 끝난 것이다.
걷잡을 수 없는 공허감이 왔다.

#34.
다시 일상의 안일에 깊숙이 함몰할 것인가

#35.
지독하게 열심히 했다.
밤잠을 설치고, 입맛을 놓치고, 남의 좋은 글을 읽고 샘을 내고, 발표의 가망도 없는 글을 썼다.

 

 

<시간은 신이었을까> 中


#36.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소중한 체험이 있다면
그건 시간이 해결 못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는 것이다.

 

 

<내 식의 귀향> 中


#37.
이 세상에 섬길 어른이 없어졌다는 건
이승에서 가장 처량해진 나이이다.

 

 

<마음 붙일 곳> 中


#38.
내가 될 수 있는 대로 미소하고 속절없는 것들한테 마음 붙이려 드는 것은,
떠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기를 소망해서가 아닐까.

 

 

<그때가 가을이었으면> 中


#39.
그렇다고 내가 내 생활의 톱니바퀴와 각박하게 엇물려 놓은 게 어찌 계절뿐일까.

#40.
사람의 생각이 투명하게 밖으로 내비치지 않는다는 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얼마나 큰 축복일까.


요 바닥에 엎드려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뭔가 쓰는 일은 분수에 맞는 옷처럼 나에게 편하다.

박완서 작가는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불혹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박완서 작가의 작품은 한마디로 참 소박합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봤을 내면의 이야기를
모순하지 않고 소박하게 또 진실되게 드러내곤 하지요.

이러한 작품 세계를 인정 받아
한국문학작가상(1980), 이상문학상(1981), 대한민국문학상(1990),
이산문학상(1991), 중앙문화대상(1993), 현대문학상(1993),
동인문학상(1994), 한무숙문학상(1995), 대산문학상(1997),
만해문학상(1999), 인촌상(2000), 황순원문학상(2001), 호암상(2006)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습니다.

박완서 작가가 남긴 작품은 40여 년간 80여 편의 단편과 15편의 장편소설을 포함,
동화, 산문집, 콩트집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으로
지금도 작완서의 삶을 대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