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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가 흥미롭게 보인다면, 그 도시는 흥미로운 도시이고,
거리가 따분해 보인다면, 그 도시는 따분한 도시입니다.


도시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의 하나가
'도시의 거리' 입니다.

그렇기에 어느 도시나 위험하거나 무섭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주로 '거리에서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 입니다.
 

 
범죄가 빈발하고 희생자가 발생한다면
사람들이 떠나는 도시가 될 것이고,
지역은 황폐해질 것입니다.

도시의 황폐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거리와 보도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거리의 공공안전을 어떻게 확보해야 할까요?


간혹 낯선 사람들에게서 안전을 담보 받기 위해
도시의 밀도를 낮추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또한, 소수민족이나 빈민, 부랑자 등에게
책임을 전가한다해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죠.

부자 동네든, 가난한 동네든, 중산층 동네든 간에
흥미로운 거리와 거리에서 만들어내는 수많은 접촉에 의해
피해를 입는 지역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렇다면 도시 거리를 범죄의 위험에서
안전하게 보호하는 방법 중 하나는
사람들이 거리를 끊임없이 분주하게 이용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쇼핑과 산책을 하러 나오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일을 하는 것처럼
다양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거리에 한 데 섞여 접촉을 이뤄내게 하는 것이죠.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접촉은
그것이 아무리 작고 우연적으로 보일지라도
도시의 생활을 풍부하게 채울 수 있는 방법입니다.

사실 이런 점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거리를 사람들이 주로 찾고 이용할까요?
성공적인 도시 거리에는 세 가지 주된 특징을 갖추고 있습니다.


첫째,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 사이에 분명한 경계선이 존재해야 합니다.


거리가 분주하게 돌아가되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이 서로 스며 들어서는 안됩니다.
대도시에서는 주로 낯선 사람들로 가득차 있을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가,
소도시에서는 친밀한 관계의 이웃주민들 사이에서의 개인의 사생활,
누군가가 나의 시간에 끼어들어도 되는지를
적당히 통제할 수 있는 도시의 속성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일본 나가노 현 동북부에 있는 '오부세' 는
'일본 마을만들기의 교과서' 라고 불릴 만큼 살기 좋은 마을입니다.
나날이 인구가 줄고 통폐합 위기에 처했던 마을이었지만,
지역 전통 경관을 살리고 특산물을 이용한 산업 덕분에 마을이 부흥할 수 있었죠.
특히 경관을 살리며 실시한 '오픈가든'은 오부세의 대표적인 자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밖은 모두의 것, 안은 자신의 것
- 다무라 아키라(田村明)의 <마을만들기의 발상> -

 

 

 

"밖은 모두의 것, 안은 자신의 것" 이라는 슬로건으로
오부세 주민들은 마을 공공 공간 외에도 자신들의 정원을 치유의 공간으로 열어뒀습니다.
오부세 면사무소에선 오픈가든에 참여하는 집들에 표지판을 붙여 여행객들에게 알립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핵심적인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구경하세요!"

오부세의 오픈가든│ⓒ양평시민의소리


공적 공간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영역이 아닌,
모두의 자유가 인정되는 영역인 것입니다.

좋은 거리는 이처럼 도시의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이
명확하게 구분된 채로 낯선 사람들을 받아들일 채비가
잘 되어 있는 거리로 더욱 유쾌하게 기능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거리를 바라보는 눈이 많아야 합니다.


거리를 바라보는 눈이 많아지기 위해서는
거리의 건물들이 거리를 향해 있어야 하고
거리에 접한 면을 내팽개쳐서는 안 됩니다.

거리를 따라 늘어선 건물들 안에 사람들이
거리를 주시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누구도 텅빈 거리를 내다보는 일을 즐기지 않겠죠.
사람들은 대부분 활발하게 움직이는 거리를 바라보는 걸 즐깁니다.

거리가 활발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의 상점을 비롯한 공공장소들이
지역의 보도를 따라 조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특히, 저녁이나 밤에도 사람들이 이용하는 상점이나 공공장소들이 있어야 합니다.
상점과 술집, 식당들은 갖가지 복합적인 방식으로
거리의 안전을 높이도록 기능하게끔 되어있습니다.

가게 주인들은 어떤 사람들보다 평화와 질서를 강력하게 옹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누구도 가게의 유리창이 깨지고 강도가 침입하길 원하지 않겠죠?
이 사람들이 거리에 많아지는 것이야말로 탁월한 거리 감시자이자 관리인이 되는 것입니다.

공적인 공공장소로서 거리가 기능하게끔 하고,
이러한 공적인 거리에 가능한 감시의 눈길이 끊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셋째, 보도에는 이용자들이 끊이지 않아야 합니다.


거리가 활발해지면 사람들이 보도를 이용하게 만드는 구체적인 이유가 됩니다.
그리고 이 장소를 찾는 사람들은 거리를 지나면서 인근에 다른 장소들도 거치게 됩니다.
이곳들은 그 자체로는 이용할 만한 곳이 아니지만
다른 곳을 가기 위해 거쳐 가는 경로가 되어 사람들로 북적이게 됩니다.

일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나 먹을거리, 마실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활동
그 자체가 다른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유혹으로 작용합니다.
사람들은 도시에서 분주한 활동을 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을 보는 것을 즐긴다는 사실은 어느 도시에서나 분명하게 확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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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빈 거리, 가게도 없고 길을 건너는 보행자도 드문 거리에
벤치가 덩그러니 있다면 날씨가 아무리 좋아도 벤치에 쓸쓸하게 앉아 있으려고 할까요?
그것만큼 지루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다른 어떤 도시나 거리의 풍경도 비슷합니다.
활기 넘치는 거리에는 언제나 거리를 이용한 사람들과
구경만 하는 사람들이 모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명이 밝은 거리에서는 범죄가 안 일어날까?

조명이 사람들의 시야범위를 넓히는 효과가 있겠지만,
조명 자체가 범죄를 막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실제로 쳐다보는 눈만 없으면 조명이 환한 지하철역에서도
끔찍한 범죄가 공공연하게 일어날 수 있지만,
사람과 눈이 많은 '어두운 극장'에서는 이런 범죄가 결코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흥미롭고 안전한 거리가 있는 도시에는
① 공간의 명확한 분리, ② 거리를 감시하는 눈, ③ 끊임없이 보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란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고 이러한 거리의 기능은 도시의 황폐화를 막아내고
지역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간혹 왜 매력적으로 가꿔진 일부 '걷고 싶은 거리'를 사람들이 외면하면서
'힙한 장소'라 불리는 거리에는 사람들이 붐비는 것일까요?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힙한 장소에 비해 사람들을 끌어당길 요소(상점이나 인프라)가
부족한 원인이 가장 크다고 생각되며 차도 옆에 조성된 거리이기에
정비는 잘 되어 있지만 전혀 걷기 좋은 거리가 아닌 경우들이 많습니다.

거리가 활발하게 기능하기 위한 관심보다는
도시가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앞으로도 활발한 거리를 조성하고자 하는 노력이
자칫 또다른 문젯거리로 양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제인 제이콥스
‘걷고 싶은 거리’에는 수학적 비밀이 있다?, KBS
아름다운 마을이 강하다, 성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