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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달동네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갑진년(1904)에 왜병이 전환국(현재 중구 전동) 근처에 주둔하였는데, 이 때 이곳 주민들을 강제로 철거시켜서 송현동 산언덕에 새로운 주거를 정해 주었다고 한다. -고일의 『인천석금』(1955)-
인천 동구의 수도국산은 소나무가 많다는 뜻으로 '만수산' 또는 '송림산'으로도 불렸고 개화기부터 조계지에서 밀려난 가난한 조선인들의 보금자리였고 한국전쟁 이후 고향을 잃은 피난민들이 대거 몰려들었던 달동네였다. 조그마한 보금자리에서 당시 사람들은 삶을 영위하고 새로운 기회를 모색했으며 힘든 시간 속에서도 희망과 정을 나눴다.
1971년 11월의 어느날을 재현하다
"뻥이요~" 외침 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릴 듯한 공간
여느 달동네와 마찬가지로 구멍가게, 연탄가게, 복덕방, 이발소 등이 모여있고 좁은 골목길이 굽이굽이 이어져 당시의 모습을 잘 재현해두었다. 이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그때 그 시절 추억이 서린 풍경은 아직도 옛 항수를 불러일으킨다. 아이들에게는 시대교육의 현장,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으로서 기능하고 있어 매력적이다.
당시 생활모습은 어땠을까?
달동네의 주거환경은 매우 비좁고 열악했다. 달동네는 대개 경사지에 터를 닦아 대지가 좁고 긴 모양이므로 넓은 마당을 가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마당이 유일하게 햇빛과 맑은 공기를 얻을 수 있는 통로였고 방에서 하기 어려운 작업을 할 수 있는 일터의 역할을 했다. 이처럼 달동네 가옥들은 부족한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마당을 내부처럼 활용하고, 수납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가옥이나 방 상부 공간을 이용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달동네는 대부분 다가구 형식으로 1~2개방과 1개의 부엌 단위로 구성되었고, 한 가구당 평균 면적은 3.5평 내외였다. 2개 이상의 부엌을 가지는 곳은 세입자를 받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달동네
수도국산 달동네는 1990년대 후반 '송현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공원이 조성되면서 사라지고, '어렵게 살아온 우리 동네 모습을 되새겨보자'라는 취지에서 지금은 박물관에서만 당시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간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온 듯한 수도국산 박물관에서는 당시 교복을 직접 입고 추억의 가게와 물품을 관람할 수 있으니 더욱 흥미로운 공간으로 느껴진다.
박물관, 문화재를 품은 공원
수도국산박물관과 관람을 마치고 함께 둘러보기 좋은 근린공원과 문화재
송현배수지 제수변실 : 인천 최초의 상수도 시설이자 도시 계획시설
인천은 원래 우물이 적고 수질이 좋지 않았는데, 개항 이후 급격하게 증가한 인구로 물 확보에 문제가 발생하였고 이에 대한제국 시기 탁지부(중앙관청)에서 1906년 수도국을 신설하고 공사에 착수하였다. '수도국산'이란 명칭은 1909년 인천과 노량진을 잇는 32.62Km의 상수도 공사를 벌인 뒤 산꼭대기에 수돗물을 담아두는 배수지를 설치하면서 생겨나게 되었다.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관람시간 : 화요일~일요일 9:00~18:00 (매주 월요일 휴무)
관람요금 : 어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무료
전시해설 : 10:00~17:00 (점심시간 12:00~13:00) *당일 현장 신청만 가능 / 단체 신청 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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