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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과 백성이 함께 만들어간
조선 건축의 르네상스
- 수원화성 -

 

 

수원을 밤을 지키는 수원화성의 웅장한 모습

 

아름다움과 강인함이 공존하는 조선 최고의 요새


길이 5.7km
48개의 방어시설
곳곳에 숨겨져 있는 총구와 포구


방화수류정 l ©위키백과

방화수류정

매혹적인 절경으로 적을 유혹해서 공격한다는 명칭이 붙을 만큼 아름다운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 l ©네이버블로그(캡틴)

화홍문

일곱 개의 수문이 있는 화성의 무지개

 


 

벽돌로 만들었지만 테두리가 동글동글한 서북공심돈

 

공심돈(空心墩)

단어 뜻 그대로 돈의 내부가 비어 있는 형태로
적의 동향을 살피는 망루

※수원화성에서만 유일하게 볼 수 있는 형태


수원화성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이유는
외면이 아닌 내면


왕의 말이 곧 법이던 조선시대 수원화성의 건축과정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를 보면 특이한 기록이 있습니다.


화성성역의궤 l ©국립중앙박물관



'강악지, 김삽사리, 신지팽이, 작은노미…'


바로 공사에 참여한 백성들의 이름입니다.
백성들의 이름은 물론 일한 기간, 품삯, 출신지역까지 적혀있는데요,
직종과 작업 기간에 따라 대가를 지급했다는 증거입니다.

왕의 말이 법이었던 시대,
강제 부역이 당연했던 시절에
정당한 대우를 했던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품삯도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두 달 치 임금이면 초가집 한 채를 구입할 수 있는 품삯이어서 하층민들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해 준 것이죠.

 


"장인들에게 자부심을"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정조는 기술장인들에게는 동서남북 성문 벽돌에
장인들의 이름을 새길 수 있게 해줬습니다.
내가 만든 기술로 화성이 지어졌다면 더욱 동기가 부여됐겠죠? :)


수원화성 벽돌에 새겨진 장인들의 이름 l ©KBS천상의컬렉션

 


"애민정신이 드러나는 정조의 공사 지침"


인부에게는 숙소가 제공되었고
일하다 다치면 의료와 식사비도 제공되었습니다.

여름이면 더위 먹지 말라고 척서단이라는 환약(일사병 치료제)

겨울에는 정3품 양반들만 쓸 수 있었던 토끼털 귀마개와 털모자도 제공되었죠.

화성을 짓는 중에 일꾼들을 위한 격려 잔치도 꾸준히 열어줬는데요,
2년 9개월 동안 무려 11차례에 달했습니다.

정조의 백성사랑이 어마어마하자 복지정책을 반대한 신하들이 하나 둘 생겨났고 그때 정조는 이런 말을 합니다.


민심을 즐겁게 하고
인력을 덜어주는 데 힘써야 하며
조금이라도 백성을 힘들게 한다면
이는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들의 추위가 나의 추위와 같고
그들의 노고가 나의 노고와 같다
- 정조의 공사지침 -


참으로 가슴이 울컥해지는 말인 것 같습니다.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지금 이 시대까지도
전달되는 것 같네요..

 


버들잎 모양의 수원화성

보통 성곽은 둥글거나 네모반듯 하지만
수원화성은 불규칙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화성성역의궤 l ©국립중앙박물관



성곽을 쌓으려면 원래 살던 백성들은 이주를 해야 하는데,

이주를 하기에 넉넉지 않은 백성들을 위해 강제이주 대신 성곽의 위치를 조정했습니다.

이주민들에게는 철거, 이사비용을 해줬고
이사 가야 하는 상인들에겐 창업비용도 줬습니다.
백성을 포용한 것입니다.

구불구불한 성곽이야 말로 백성을 아끼는 정조의 마음


그리고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임금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한 백성들은 성곽을 열심히 쌓았고, 예상 공사기간이 10년이었던 수원화성은
단 2년 9개월 만에 완공됩니다.

 


"지금의 수원화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복원작"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완전성과 진정성이 결여되어서는 안 됩니다.
즉, 복원작으로는 등재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전란을 거치며 많이 훼손된 수원화성이
어떻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화성성역의궤에 있는데
공사 일정, 설계도, 자재, 비용까지 모든 것이 상세하게 적혀 있어
정조 시절과 동일하게 수원화성을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화성성역의궤 l ©국립중앙박물관
화성성역의궤 l ©국립중앙박물관

 


화성성역의궤의 기록으로 완벽하게 복원된 수원화성.
정말 놀랍지 않나요?
한국의 놀라운 기록문화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애민정신이 담긴 조선의 신도시 수원화성.
청초한 가을 하늘 아래 그 시대를 걸어보는 것을 어떨까요?